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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도암 백순길 개인전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4.28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143
내용



미메시스를 통한 예술적 본질 탐구


 

안 영 길(철학박사, 미술평론)

 

 

예술이 현실의 미메시스(mimesis)라는 명제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서양 예술론의 중심을 이루는 화두이다. 미메시스는 일반적으로 모방이라고 번역되지만 재현, 묘사, 표현 등의 포괄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에서는 ‘진정한 모방이란 눈에 보이는 무가치한 사물의 모방이 아니라 실재 그 자체’라고 여겨지는 이데아(Idea, 이념, 관념)의 모방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아리스토텔레스는 미메시스가 ‘인간의 본능’이자 ‘무엇을 아는 즐거움’을 얻는 중요한 수단이라고 생각하여 인간의 심성과 행위의 보편적 양상을 ‘있을 법하고 또 있어야만 하는 법칙’에 따라 제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물의 본질이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사물 속에 들어 있다고 믿고 현상을 중요시하는 모방론을 내세우고 있다. 이처럼 미메시스의 개념에는 인간과 삶의 본질적 특성(보편성) 또는 우주의 실재를 모방한다는 생각과 사물과 인간생활의 표면적 현상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는 생각을 동시에 포괄하면서 이후에는 외적인 실재와 내적인 실재 모두를 재현한다는 의미로 예술론에 적용되어 왔다.



왼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작가 백순길의 회화에서 미메시스는 어떻게 구현되고 있을까? 플라톤으로부터 유래한 이념이나 정신성을 중시하여 외적인 것은 단지 껍데기에 불과하고 실재란 감각적으로 볼 수 없는 다른 세계에 있다고 보아 외적 유사성을 거부하고 내적이며 정신적인 것의 표현을 중시하는 현대 추상미술의 경향에 가까운 것일까? 아니면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현상을 중시하여 외적인 유사성을 창조적으로 성취하여 대상의 본질이 잘 드러나도록 현실을 구조적으로 재구성하는 창조적 모방론에 더 가까운 것일까? 백순길의 경우는 이들 두 가지 견해를 교묘하게 결합하여 자신만의 방식을 찾았다고 볼 수 있는데, 감정이입과 성찰을 가미한 그의 미메시스는 자연의 여러 요소들에 근거를 둔 예술작품의 자유로운 창조를 제시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 백순길이 창작의 중심주제로 삼고 있는 ‘돌’의 이미지를 통해 그 생각의 편린을 엿볼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우주 속 지구의 축소판이기도 한 ‘돌’의 상징성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작가는 자신의 성찰을 담아 그려낸 ‘돌’과 주변 사물의 다양한 조합을 통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존재의 본질은 무엇이고 존재의 의미는 무엇인가? 작가는 고대 석기시대부터 인류의 의식과 문화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친구가 되어 주었던 ‘돌’에 대한 인식을 미메시스적으로 그려내면서 그 답을 찾고자 한다. 〈공존〉 〈공존의 법칙〉 〈공해지대〉 〈울림〉 〈침묵〉 〈오른손〉 등으로 제목을 붙여 존재의 표상으로 제시된 ‘돌’의 이미지는 조건에 따라, 다시 말하면 돌 위의 식물과 사슴벌레, 꽃과 나비, 서로 마주보는 꽃과 사마귀, 시들어 떨어져 있는 장미 한 송이 등 상황에 따라 존재의 의미와 가치가 달라진다. 작가의 사랑과 감정이입이 묻어나는 〈어머니〉 〈매형〉 〈누님〉 〈자화상〉 같은 가족의 초상처럼 말이다.



작가는 대상의 외형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돌‘과 공존하는 사물의 조합과 선과 색채의 상징을 통해 현실인식과 성찰을 교감의 울림이 있는 메시지로 전달하고 있다. 〈공해지대〉에 머물면 장미가 시들 듯이 적합한 생존공간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색으로 규정되면 경직된 이데올로기에 갇혀버리고 말지만, 작가 백순길은 세태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따뜻한 감성으로 상생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자신만의 예술적 창조를 지향하고 있다. 풀과 사슴벌레 같은 곤충이 공존하고 꽃과 나비가 함께 살 수 있는 상생의 공간을 창조함으로써 공감과 카타르시스를 이끌어내어 각박한 환경 속의 지친 영혼들을 치유하고자 한다.



작가 백순길은 사망선고와도 같은 뇌졸중의 후유증으로 오른쪽 신체가 마비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이미 숙명으로 받아들인 작가로서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각고의 노력 끝에 왼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작가로 창작에 매진하고 있다. 그가 그리는 ‘돌’은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화가로서의 재능과 열정이 응축된 삶의 상징과도 같은 것으로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척박함 속에서 편견을 이겨내고 상생과 공존을 꽃피우는 우주적 공간이다. ‘돌’은 단단하고 굳건한 자기 극복의 의지를 상징하는 친구와도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작가는 ‘돌’의 이미지 속에 절제된 희로애락의 감정을 투사하여 자신의 고단한 삶을 치유하는 버팀목으로 삼고 있다. 작가 백순길이 추구하는 미메시스를 통한 예술적 탐구 속에는 예술가의 삶에 대한 경외와 감동이 살아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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